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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포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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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나맘 작성일2016.03.30 조회2,8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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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금 유럽은 부활절입니다. 한국에서는 추석이 설 다음으로 큰 명절이듯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부활절이 큰 명절인 듯 합니다. 많은 가족들이 휴가를 떠나고 가게들은 문을 닫고 거리도 오랜만에 한산합니다. 

오늘은 스님의 이스라엘 포교 소식을 올리려고 합니다. 청안스님은 3월 3일부터 16일까지 이스라엘 
Yafo에 다녀오셨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비행기로 약 3시간 12분 거리입니다. Yafo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텔아비브 구에 위치한 도시이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도시라고 합니다.   




 Yafo 항구의 모습입니다.





스님이 찍은 Yafo 건물들입니다.

이번 이스라엘에서는 Modi'in 요가센터와 Geha 정신병원 두 군데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중 Modi'in 요가센터에서 어떤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질문: 에고(ego)라는 것이 왜 존재하나요? 에고가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어떤 성인들의 책을 읽어보면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에고와 순간순간 싸운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에고는 왜 생겨났고 에고의 좋은 점도 있습니까? 

답변: 당신의 질문을 들어보니 에고란 나쁜 놈에 비유될 수 있고 이 나쁜 놈은 두 무리를 끌고 다니는데 하나는 '진화'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깨달음'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이 두 개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란 무엇일까요? 진화라는 것은 어떤 하나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진화론에는 허점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진화라는 것에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우리는 진화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선 진화라는 개념을 재쳐두도록 하겠습니다.

또 하나, '깨달음'이란 개념은 정의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진화는 과학적인 용어이지만 꺠달음은 영적이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은 실제로 경험하거나 체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재쳐두겠습니다. 

그러면 남는 것이 자기 자신이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나'에게는 '더 좋은 나'도 '더 나쁜 나'도 없고 '깨달은 나'도 '에고로 가득한 이기적인 나'도 없습니다. 그냥 '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 이것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느냐가 다음 단계입니다. "왜?"라는 질문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성적 사고는 그것에 대한 많은 설명들을 만들어내고 이 설명은 계속 서로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설명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이제 그만 생각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요.. 따라서 "왜?"라는 질문 대신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십시오. "이 에고라는 개념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게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하게 되면 아주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나라는 정체성과 뒤섞여 올라오는 걸 보게 됩니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에고의 전부입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에고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업, 분별심 등의 것들이 나라는 생각과 합쳐져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문제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많은 작용을 합니다. 그 중 하나는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마나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7식에서 이런 작용이 일어납니다. 신선한 음식과 썩은 음식을 구분하고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구별할 때 이 7식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7식을 잘못된 방향으로 쓰면 분별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 됩니다. 같은 의식의 작용이지만, 전자는 올바른 방향으로 썼을 경우이고 후자는 잘못된 방향으로 썼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라는 정체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개념은 7식에서 만들어져 '나'와 세상을 구분하여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의식이 없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지 않고 내 신발을 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실수가 아니고 내 잘못임을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잘났고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나'라는 정체성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의 에고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나라는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일어나는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살펴본 후에서야 우리는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되고 나와 남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라는 생각이 많은 부담과 고통을 야기하게 됩니다. 내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라는 생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인가" "나의 이 모습들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내 단전에 넣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을 가지고 생각과 싸우거나 내 감정과 싸우지 말고 단전에 넣으십시오. 나의 아상 또는 나의 어떤 업을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강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면 그 생각과 감정은 또 지나가므로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나의 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마십시오. "그래, 어쩔 수 없지. 이게 내 모습인데 뭐.." 이 또한 잘못된 방향입니다. 자신의 미래의 길을 미리 결정하지 말길 바랍니다. 나아갈 길은 당신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허공처럼 맑고 거울처럼 명료한 마음에 대해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사라지지도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수행을 통해 아무것도 잃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의 헛된 생각, 분별심, 아상만 사라질 뿐입니다. 이 길을 걷다보면 에고가 사라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수행을 하게 되면 그런 순간이 옵니다. 그건 누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 스스로만 해낼 수 있는 경험입니다. 그 순간이 되면 완전한 탈바꿈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업이 남아있는 한 이 '깨어나는 경험' 또는 '나'가 없는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완전한 탈바꿈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행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업의 박물관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러 종교적 전통들은 우리를 이 깨달음의 순간으로 인도해서 나와 이 세상이 완전한 하나가 되는 경험으로 이끕니다. 그 때 독립된 '나'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우리는 깨어나게 되고 그때서야 우리의 영적인 진화를 정의할 수 있게 됩니다. 




법문이 모두 끝나고 차담을 나눕니다 ^^ 청안스님 옆에 계시는 스님은 12월에 원광사를 방문하셨던 이스라엘 스님 Tami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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