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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스님] 길 없는 길로 떠나는 이   2002-11-15 (금) 07:11
관리자   3,087

“개끗한 일월(日月)이 허공에 있으면서 밝게 비추면 온갖 물에 그림자가 나타나되 물에는 섞이지 않듯이 보살의 정법륜(淨法輪)도 이와 같아서 세간심수(世間心水)에도 섞이지 않는다.”는 말씀이 『화엄경(華嚴經)』「이세간품(離世間品)」에 있습니다. 평소 산중 주지(住持)를 살면서 주지가 될 때마다 심중(心中)에 새겨온 가르침인데 해제일(解題日)을 맞이하여 운수행각(雲水行脚)에 나서는 대중들께 말씀드립니다.

저도 풋풋한 스물에 산중에 들어와 사십여 년 살다 보니 수행자라 해도 빈궁하다 보면 보시하기가 쉽지 않고, 남이 좀 알아주는 자리에 있으면 인욕이 잘 안 되고, 순한 경계에 부딪치면 악한 경계에 부딪치는 것보다 계를 지키기가 어렵고, 젊고 기운이 넘치면 애욕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점을 몸소 느끼고 살았기에 기백이 높은 여러 스님들을 보내드리고 싶지 않으나 지난 철 정진력(精進力)이 충만하시니 믿고 스님들의 뜻을 따릅니다.

해제일이 다가오면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이 많은 나그네가 되는 것이 수좌(首座)의 살림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높은 안목(眼目)과 혜안(慧眼)과 철저한 구도심(求道心)만 갖추어져 있다면 어디를 가시든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모든 중생이 선지식이나 부처님처럼 보일 것이요,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모두 가슴을 여는 진리요, 설법 그 자체가 아니겠습니까? 가다 쉬다 걷다 산천경계 좋으면 걸망 베고 좀 누웠다 한숨 자고 계곡 좋고 반석 좋고 정자 좋은 곳 만나면 죽비 한번 탁 치고 정진하고 그렇게 그렇게 지내서 바위처럼 견고하고 계곡 물처럼 청정하고 소나무처럼 곧고 달처럼 밝고 대나무처럼 텅 비워진 마음이 된다면 얼마나 멋진 만행(萬行)이 되겠습니까?

금강석(金剛石)은 부숴도 조각 조각이 값비싼 보배요, 향나무는 잘라도 조각 조각이 뛰어난 향을 지녔으니 한 철 정진 잘 하신 분들께서야 보배로운 그 마음이 어디에 가신들 차이가 있겠습니까?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될 것이요,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향기가 될 것이니 새와 나비가 꽃나무를 따라다니듯 수행자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다만, “명리납자(名利衲子)는 초의야인(草衣野人)만 같지 못하다.”는 서산스님(西山大師)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세인의 평에 두지 않고 공부인의 양심을 지키며 천진(天眞)하게 길을 갈 수 있다면 훤칠한 도인이 세상 가운데 머문 듯 무슨 위태로움이 따르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수행력이 보잘 것 없는 처지라면 초발심행자(初發心行者)가 된 마음으로 산중에 남거나 얼른 다시 돌아오셔서 새로운 각오로 정진에 임하시길 당부 말씀 드립니다. 요즈음 언론에서 ‘초발심’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오늘 이왕에 ‘초발심’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잠시 그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보적경(大寶積經)』에 부처님께서 문수보살(文殊菩薩)님께 이르시기를 “만약 어떤 보살이 삼계의 일체가 생각(想)으로 생(生)함을 평등하게 관(觀)한다면 이를 최초발심(最初發心)이라고 하나니, 문수사리여! 이를 보살의 초발심이라 이름하느니라.”고 하셨고, 또 『화엄경』「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에서는 “이름이 초발심공덕품이라는 것은 처음 비로소 발심하여 고금(古今)이 없음을 보는 것을 초라 이름하고 무심지(無心智)로 응(應)함을 발이라 이름하고 신변(身邊)의 봄(見)이 없어짐을 심이라 이름하고 ……”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사론(俱舍論)의 설명처럼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출가자나 세속인이나 사람의 아집(我執)은 차이가 없으니 스스로 지혜롭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지 않고 앞에 나서려고만 하니 여기저기서 초발심으로 돌아가자고 하는가 봅니다. 독선(獨善)은 모든 시비의 근본이며 자만(自慢)은 모든 부패의 근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늘 이를 경계하며 수행하여야겠습니다.

대오(大悟)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이상 마음 속에는 항상 온갖 죄악과 망상을 일으키는 업이 여섯문(六門: 눈․귀․코․혀․몸․뜻) 속에 갇힌 원숭이처럼 부르기만 하면 발광하고 뛰쳐나올 준비가 되어있는데 이떻게 늘 초발심을 벗어날 것이며, 순간 순간을 벼랑 끝처럼 눈 덮힌 낭떠러지 길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한철 험한 산길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서 시원한 경계 좀 맛뫘다고 구름 따라 다니다 구름처럼 허망한 살림살이 되지 말고 웬만한 분은 오늘이 결제라 생각하시고 이 산중에서 저와 함께 삽시다. “장맛이 짠 줄만 알면 공부할 수 있다.”고 하신 만공스님(滿空禪師)께서도 공부를 하는 데는 도량(道場)과 도사(道師)와 도반(道伴)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으니 미우나 고우나 대중이 머무는 곳에 함께 머무시길 진정으로 권합니다.

때로 중생 구제(衆生救濟)의 큰 뜻으로 하산(下山)하시는 스님들도 계시지만 아무리 진중하고 명철하다 하여도 견성(見性)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명백히 희고 검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불법(佛法)을 전한다고 해도 사실은 본인들의 소견이 될 뿐 부처님의 법과는 맞지 않는 허묾만 만들고 다니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가 있습니다.

세속에서 유행하는 염불하고 경 읽고 보시하고 계를 지키는 유위법(有爲法)에 바져서 복을 짓고 복을 받고 생사윤회를 따르다 보면 어느 세월에 무위법(無爲法)을 닦아서 생사를 초월하겠습니까? 오직 마음을 깨닫기 위해서 있는 참선법에 의지해서 정진합시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선성스님(善星比丘)께서는 8만4천 경전을 다 외웠는데도 마음을 깨닫지 못해서 윤회를 면치 못했고 아난스님(阿難尊者)께서도 25년간 부처님을 시봉하시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 되셨으나 견성하지 못하여서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칠엽굴(七 葉屈)에서 행한 제1결집 때 가섭 스님(大迦葉)의 허락을 받지 못하여서 참석하지 못하고 문 밖에서 선 채로 용맹정진(勇猛精進) 후 결집이 열리기 전날 밤에 지혜의 눈이 열려서 밝은 마음으로 결집에 동참하게 됩니다.

참선법에는 들어서 알 수도 없거니와 혹 들어서 아는 척해도 다 소용이 없고 오직 수행해서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이니 아 산중에선 배워서 아는 것과 깨달아 아는 것의 차이를 땅과 하늘로 봅니다.

자, 이제 그만 수승한 선객(禪客)에게는 대나무 빗자루로 물 똥 쓰는 소리 그만 두려고 하니 부디 길 없는 길로 떠날 분들만 무애가(無礙歌)를 부르며 탕탕히 떠나십시오.

고해 중생을 모두 걸망에 모아 메고 장삼자락으로 사바세계를 덮으며 훨훨 떠나십시오.


-하안거 해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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